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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그는 누구인가...

by 챌린지트로피 2020.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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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4성 장군이자 미국과의 동맹을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했다고 친일파들로부터 전해지는...

1950-53년 한국전쟁의 기회주의자 백선엽이 금요일밤 서울아산병원에서 99세에 사망했다.

 


백씨는 1910-45년 일제 강점기에, 1920년 11월 23일 평안강서구에서 태어났다 남도.
 
그는 원래 교사가 될 계획이었지만 1941년 만주 Mukden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 군대의 장교가 되었다. 

그냥 일본군 장교가된거지.

만주국은 만주에 있는 일본에 의해 설립된 꼭두각시 국가였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군 대위로 복무했다.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해 1945년 우리나라는 식민 통치에서 해방되게 되었다. 

한반도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되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백씨는 육군 제1보병 사단의 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6.25전쟁 당시 백 씨는 1950년 9월 부산 외곽 방어의 결정적 순간인 다부동 전투에서 북한 군을 저지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 져 있다.
여기서 중요한점이있다. 전선이 200km가 넘는곳에 수많은 장군이과 장교들이 들어가서 싸웠다.

하지만 왜 백씨만 저렇게 유명해진것인가?  치열한전투에서 비굴한 목숨을 살려내서 온것을보면 뒤에서 총몇번쏘고

후퇴한것같다.   

바로 친일제국군의 혈서장군. 박정희를, 백선엽이 살려줬기때문이다.

박정희는 만주국 일본군장교로지내면서 일본 천황에게 손가락깨물어 혈서까지쓰고 입대해서 충성을다했다.

그러다가 일본이 망하고 남로당빨갱이짓까지 별별해괴한짓은 다하고다녔다. 죽을뻔한그를 백선엽이 기회를준것이다.

그러니 지들끼리 물고빨고 백선엽이는 친일군사정권의 비호를받으며 갖은 인권착취를해가며 2,000억원이상의 재산을

모은것이다.

그뿐이랴 백선엽의 최고의 잘못은 만주에서 조선독립군을 때려잡으며 일본제국에 충성을한죄인데.

사지를 갈가리 찢어발겨도 그 죄는 지워질수가없을것이다.

자꾸 공과 죄를 논하는데.  그것도 논할게있고 아닐게있지...

어디 독립군을 때려잡은 친일파에게 공과죄를 논한단말인가?  공이있다한들 죄가 하늘을 가리기때문에 거열형에

처할수밖에없는 인간을 대전 현충원에 모신다는게 말인가 방구인가?

 

밑에는 거짓날조될 확률이 높은 백선생의 전해지는 무용담.


한국군은 전쟁 초기에 파괴 직전에 몰려 진격하는 북한 주민들에 맞서 싸우기 위해 낙동강을 따라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백씨는 전투 중에 자신의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이제 후퇴할 곳은 없다."우리가 후퇴하면 미군은 철수할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끝날 것이다. 나는 당신의 지휘관으로서 최전방에 있을 것입니다. 내가 무서워서 후퇴하면 먼저 쏴 버려요.
 
그는 나중에 그 전투가 유엔군의 승리로 끝난 것을 기억했는데, 그것은 그의 가장 격렬했다.
이 전투에서 백씨의 연기는 미국의 경쟁자들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다.
 
1953년 1월 31일, 33세의 백씨는 한국 최초의 4성 장군이 되었다. 그 해 말 한국 전쟁은 휴전 협정으로 끝났고 백씨는 휴전 회담에 참여했던 한국 대표 중 한 사람이었다.
1959년에 백씨는 한국 합동 참모 본부의 의장이 되었다.
 
이듬해 전역한 후 백씨는 1960년대에 중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대사로 두번째 외교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후에 1969년부터 1971년까지 교통부 장관으로 일했다.
 
한국은 국가 안보와 양국 동맹에 기여한 것으로 여겨지는 미국인들에게 상을 주기 위해 2013년에 백선엽 장군상을 제정했다.
화려한 군 경력에도 불구하고, 백 씨의 만추쿠 군에서의 군 복무는 그가 일본과 협력했다는 비난으로 이어졌다. 

그러한 비난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가 국립 묘지에 안장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09년에 백씨는 대통령 직속의 한 위원회에 의해 한반도에 대한 식민 지배 동안 일본과 협력했던 친일 인사 명단에 포함되었다.
백씨는 1940년대 초에 한국 유격대 대원들과 싸운 책임을 지고 있는 만주국 육군 부대에서 복무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는 한국인들과 전투를 해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개소리지이건.
한국 군사 인권 센터는 일요일 대전 국립 묘지에 있는 백씨의 장례를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Gen. 로버트 B 주한 미군 사령관 에이브람스 씨는 지난 주말 서울 아산 병원에서 열린 백씨 추모 행사에 참석한 공적 인사 중 하나였다.
백씨의 장례식은 육군 참모 총장에 의해 주재될 것이다. 서욱 씨. 그는 수요일에 국립 대전 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백씨는 부인과 두 아들, 두 딸을 유족으로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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