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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장진영과 왕풀빵 소녀 암투병, 젊어도 걸리는 슬픈 현실

by 챌린지트로피 2021.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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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장진영과 '왕풀빵 소녀는 왜 암에 걸렸을까? ‘왕풀빵 소녀'로 잘 알려진 웹툰 작가 조수진 씨가 2011년 3월 초, 33세의 아까운 나이에 임파선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스물일곱 살 때 임파선 암 3기 판정을 받아 5년 넘게 투병 생활을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암과 싸우는 그녀가 안타까웠는지 문병을 오는 사람마다 위로의 말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그런데 왜 암에 걸렸어?” 하고 물었고 그녀는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암에 걸렸는지 나도 몰라. 나도 그것이 알고 싶어!” 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장진영
장진영

많은 사람들이 암은 40~50대 이상 중장년층이나 걸리는 질병으로 알고 있는 데 이는 아주 위험천만한 오해입니다. 미국 청년들의 사망 원인 1위가 암입니다. 매년 암 진단을 받는 사람 가운데 18~40세의 젊은 성인이 약 7만 명에 이

르고, 이것은 전체 암 환자의 6%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09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15~24세의 여성 사망 원 인 2위가 암입니다. 또한 15세 이하 아이들 사이에서도 매년 1000명 이상의 암 환자가 발생하고 있고, 15~19세의 청소년을 포함하면 1500명 이상의 암환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왜 이렇게 젊은 암 환자가 크게 늘어나는 걸까요?

 

암은 암, 청춘은 청춘’ '오방떡 소녀’ 조수진 씨가 남긴 말입니다. 그녀는 대전과학고를 나와 사회복지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어찌나 만화를 좋아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딸에게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면 만화방을 차려주겠다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뛰어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갔습니다.

 

만화가를 꿈꾸던 그녀는 대기업의 조직 문화에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대기업에 입사한 지 1년 만에 임파선암 3기 판정을 받았어 니까요. 제가 그녀를 직접 진료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투병 과정과 일상생 활, 내면의 생각들을 만화로 그려 남긴 웹툰 모음집 『오방 소녀와 행복한 날 들』을 통해 그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웹툰에서 그녀는 “상명하복의 회사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괴로워하다 결국 스트레스와 과로로 암에 걸려 회사를 그만두고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고 썼습니다. 또한 “암 환자들이 겪는 과정 으 한께 나누고 초보 암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 투병 과정을 만화로 연재하기 시작했다.”라고 했습니다.

 

암 투병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녀인 만큼 웹툰에서도 고통스런 암투병 생활을 밝고 코믹하게 그려 많은 사람들이 하게 그려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과 눈물을 함께주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이 땅에 없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암은 왜 이처럼 삶을 소중히 여기고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명랑한 젊은 여성의 생명을 앗아갔을까요? 암 전문가로서 짐작컨대, ‘왕풀빵 소녀'는 틀림없이 자신의 체력과 기력에 부치는 업무에 시달리면서 그에 대한 압박감과 함께 대인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과중해져서 암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암 진단을 받은 후 5년 이상이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긍정적인 마인드 덕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난 2009년 9월, 36세의 한창 나이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인기 스타 장진 영도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했습니다. 특히 그녀가 여주인공을 맡은 영화 국화꽃 향기와 너무나 비슷한 상황이라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은 암으로 죽어갑니다. 그녀는 연인에게 “나, 머지않아 당신을 떠나 나, 머지않아 죽는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세상 마지막 순간이 아니라, 나로 인해 눈물 지을 당신입니다.” 하면서 세상을 떠납니다. 장진영도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진영의 암 소식을 들었을 때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의사로서 격려의 메시 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인연으로 그녀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때마다 기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장진영의 연인이자 남편이 된 김영균 씨를 통해 힘겨웠던 장진영의 투병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영균씨는 장진영과 눈물겨운 사랑으로 우리들의 가슴을 메어지게 했습니다. 그들이 사귀기 시작한 지 8개월쯤 되어 장진영은 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미국까지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암은 낫지 않았습니다. 회복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김영균 씨는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장진영은 놀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 울어? 너 오늘 내 아내가 됐는데? 기뻐해야 하잖아?”

 

“내 몸이 이래서 미안해.”

 

두 사람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후 불과 한 달 남짓 더 살다가 장진영은 국화꽃 향기 처럼 세상을 떠났습니다. 위암 진단을 받은 지 약 1년 만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암이 발병한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습니다.

 

장진영은 우리가 화면에서 보던 당당하고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무척 예민하고 여리며 감수성이 남달랐다고 합니다. 남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더욱이 엄격한 가정에서 오직 집과 학교를 오가는 청소년 시기를 보냈으며 늘 조용하게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1992년 미스 충남 진'으로 뽑힌 것을 계기로 연예계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연예인이 된 후 그녀는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스토귀드 MD불안감에 시달렸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는 야유와 비난, 때로는 연예인 활동을 못하게 하겠다는 협박에도 시달렸다고 합니다. 또한 연예인이나 또한 연예인으로서 스캔들이 일어날까 봐 마음 놓고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고, 언제나 행동을 조심해야만 했습니다.

 

무척 힘들었지만 연예인이라면 감내해야 할 유명세로 알고 견디었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스트레스, 불안감 등을 술로 달랬습니다. 소주 2병 정도를 너끈히 마시는 주량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자꾸 신물이 올라오고 속이 쓰렸지만 술 탓이려니 하며 약으로 달랬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계속되는 알코올 섭취로 인하여 면역력은 급속히 나빠졌습니다.

 

저도 글을 쓰면서, 잠시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진 두 사람에 대해서 다시 한번 기억을 떠올려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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